우리는 어떤 일에 분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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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고나서 보이신
주님의 과격한 행동은
윗트니스 리 형제님이 타락한 기독교에 대해 도전적인 직언을 퍼부었던 것 이상의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한 유대교의 관례와 생활경제에 정면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고 좌판을 둘러엎었던 그 광경은
일종의 테러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고 폭삭 망해버려 별로 세를 펼치지 못하는 유대교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신약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경계가 되는 광경입니다.
주님도 언젠가 타락한 기독교를 뒤엎어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의 회복안에 있는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분노해야할까를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교회안에서 사실 별로 문제삼지 않아도 되는 일에 자잘히 민감히 반응하면서
기실 정말 문제삼고 심지어는 분노하고 반대하고 뒤엎어야할 일에 대해서
모르쇠로 넘어가는 일이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 땅에서의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기록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사물을 보시는 관점과 우리의 일상의 관심이
주님의 행동양식과 우리의 처신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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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뒤에
예루살렘거민의 환대에 대해 약간은 배반스럽고 반감을 살 수 밖에 없는 주님의 이런 과격한 행동은
궂이 그랬어야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인간이라면 또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요

마음에 확실히 믿는 바가 있지 않다면 그렇게 심지굳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주님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던 사람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게거품을 물며 소리칠 것이란 것을 미리 아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성정에 대해 기대할 것도 의지할 것도 없으리란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시선과 마음은 이땅의 한계에 묶여있는 모든 것들 너머의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보이신 백성들이 행한 악행들에 대해 마땅히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