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신학-파일첨부

사도 바울 신학


 


    
















사도 바울


바울의 로마 증거


바울의 전도 여행


 


사도 바울은 한 때 예수님의 제자를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예수님을 강력히 증거하였고,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로마시민이자 율법학자로 복음을 체계화 해 여러 서신서를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학자적 사도입니다. 이 글은 이배식 목사님의 ‘바울 신학’에 있는 내용입니다.


 


< 바울 신학 >


 


l. 서 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예수의 제자들은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기적과 이적을 행하며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이심을 증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도를 쫒는 사람들에게 대한 핍박은 날로 더욱 심화되어 갔다.


 


하지만, 성령이 충만한 예수의 제자들은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의 복음 전도의 범위는 이방 지역에 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당시 사울은 헬라문화권에서 성장한 유대인(디아스포라)으로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으며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여 조상의 유전인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던 자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역사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처하던 율법주이자 사울을 택하여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 복음의 사도 바울 되게 하시고 이방 지역에 복음을 증거 할 사도로 택하셨다.


 


다시 말해서 율법주의자 사울이 복음의 사도 바울이 된 경위는 주님의 일방적인 강권 역사로 시작되었다.


 


조상들의 유전인 율법을 열심히 믿고 지켰던 사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이단시 하였으며,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은 남여불문하고 투옥하기 위하여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청하여 가지고,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홀연히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또한 그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메시야 이심을 깨닫게 되었고, 더욱이 아나니아라 하는 예수의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그를 통하여 예수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들을 때 멀었던 눈이 다시 보게 되었으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율법주의자 사울이 복음의 사도 바울로 변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 이방의 사도로서 복음 선교에 전 생애를 바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변한 사도 바울의 회심의 동기와 소명 그리고 그의 신앙과 사상을 신학적 차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ll. 사울이 바울 된 신학적 배경과 소명


 


사울은 예수와 같은 시대(로마제국 통치하)에 살았으며, 종교적으로는 엄한 율법아래에서 교육받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공경한 철두철미한 율법사상의 소유자였으며, 사회적으로는 헬라문화권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이방문명 속에서 보고 배워 이방 문화에 박식하였으며, 특히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울은 두 세계의 사람 즉, 유대인세계와 헬라인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내적으로는 철저한 유대적인 기질을 가졌으며, 그뿐 아니라 사울은 유대인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로마와 헬라를 잘 알고 있었다.


 


사울이야말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복음을 전하기에 최적합한자로 인정 택함 받아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 유대종교와 예수 그리스도


 


A. 유대종교와 사울


 


유대인들의 종교관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으로 믿어왔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도 여호와이시며, 다스리는 분도, 명령하시는 분도, 심판하시는 분도, 구원하시는 분도, 여호와 한 분으로 믿어 왔으며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수많은 민족 중에서 그의 후손을 택하시고,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다(신 4:20, 10:14-15)고 믿어왔다.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신 6:14-15) 하나님의 뜻을 체험하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신 율법(계명)이 이스라엘 역사상 항상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언약이며, 축복의 약속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이 백성을 축복하였으며 불순종할 때 벌을 내렸다.(신 11:26-28)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관은 제물인 소나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 죄사함 받으며 깨끗해지는 줄만 알아왔다. 고로 항상 외적인 의식에만 치중하여 왔다. 이러한 율법적인 신앙관에 굳어버린 그들이지만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론에 기대가 눈에 보이는 현실과 육신적인 면에만 치우치다보니, 그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관도 항상 세상적인 눈에 보이는 희망에 치중하였다. 즉, 메시야의 오심과 잃어버린 국토의 회복, 그리고 모든 이종교자들의 침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줄 것과 이미 예정하신 다윗의 혈통에 주어진 약속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메시야 바로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들은 오리라 한 메시야는 영광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권세자들을 심판하고 통치할 줄만 알아 왔다. 율법주의적 종교관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에게는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유대인들의 기대는 반드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면, 육신으로 영원히 계시어서 통치하실 줄로 믿고 있었다.( 사9:6-7; 겔37:25; 시89:4; 단2:44; 막11:10; 눅1:33; 요12:34.)


 


그런데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예수는 죽을 것을 말하며, 또한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였으나 로마 식민지 노예에서의 해방에 대한 주권 회복의 말은 없고, 도리어 유대인인 율법주의자들의 신앙의 모순된 점을 지적 개혁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택한 백성으로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성경에서 마지막 율법의 예언자인 세례 요한도(마 11:13) 오실 메시야가 바로 예수임을 예언하고(마 3:11-17,요 1:33-34) 세례까지 베풀고도 믿어지지 않아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에게 확인하였다.(마 11:3) 율법 안에서 택한 백성임을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택함 받은 유대인외에 다른 민족은 버림받는 자들로만 알아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백성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마 23:14, 롬 10:3)


 


예수님께서는 이 그릇된 신앙을 복음으로 개혁하시었다. 유대인들은 이 복음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유대교 종교가정에서 자라난 사울 역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라고 자부하였으며,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열심 있는 자로 예수의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여를 결박하여 옥에 넘기기까지 하였다.(행 22:3-4, 빌 3:5-6)


 


B. 예수와 그의 제자들


 


예수에 대하여 유년시절 과정을 기록한 문헌은 별로 없다. 이교적인 멸시를 받고 있었던 갈릴리의 나사렛이 그의 고향이고, 그의 부친 요셉은 목수였으며, 그의 모친은 마리아이고 그리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는 그의 형제였다.


 


그 형제들은 예수의 권능을 믿지 않았으며, 도리어 예수를 배척하였다.(막 6:1-3, 마 13:55) 이들 형제 중 야고보는 나중에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일하였으며, 그의 누이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에 자주 나온다.(막 6:3, 마 13:56)


 


예수의 모국어는 갈릴리어와 아랍어였으며 히브리어는 종교적 특수 용어로만 사용 되었었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 전파 활동은 세례 요한보다 좀 늦게 시작되었다. 예수의 공적 활동은 30세가량 되었을 때부터였으며, 그가 3년 동안 천국 복음을 온 백성에게 담대히 전하였다.(눅 3:23) 또한 예수는 그의 제자를 택함에 있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하나님 나라(복음)를 전파하기 위하여 훈련시켰다.(마 10:1-3)


 


 


예수는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였으며, 율법주의자들에 모순점을 변론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며, 많은 기적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죄를 회개케 하였다. 고로 백성들은 그를 권능자 또는 메시야로 믿었으며, 오직 예수만이 죄를 심판하며,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구세주” 로 확신하였다.


 


즉 이스라엘이 대망하고 있는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받은 고난으로 그들의 신앙에 동요가 생기고 무력해졌으나,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로 인해 믿음에 확증을 얻어 새로운 힘(성령)을 얻어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은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오리라던 메시야 즉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 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유다와 사마리아에 있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행2:1-11, 40-43, 5:41-42.)


 


이에 정통 유대교에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날로 더하여 갔다. 사울(바울)도 바로 유대교 정토를 부르짖는 열열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사도들을 핍박하였다.


 


2. 바울의 성장 과정


 


A. 출   생


 


사도행전 22장 3절에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하였다. 연대는 주후 1년경이라고 한다.( The Life and Letters of St. Paul, p.22; 도양술저. [사도바울의 신학]. 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p.21.)


 


다소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주전 800년경 앗수리아의 샬만넷셀이 정복한 도시 중에 다소의 이름이 기술된 것을 보면 매우 일찍이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 같다.( Wiliam Barclay. The Mind of St. Paul. 서기간역. {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울: 기독교문사, p.18.)


 


다소는 길리기아에 있으며 다소 중심으로 흐르는 시드너스 강은 지중해와 다소 중간에서 넓은 호수 “레그마” 호를 이룬다. 다소 사람들은 호수 기슭에 배들이 정착할 수 있는 선착장을 건조하여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을 이곳으로 정착하도록 했으며 그뿐 아니라 그들은 길리기아 내륙지방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갑바도기아와 갈라디아 대륙과도 빈번한 왕래가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다소는 대륙과 해상의 교통을 연결하는 동서교통의 요충지이며 무역이 활발하였다. 또한 다소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많은 학자들이 있어 다른 도시에 비하여 학구열이 컸었다. 특히 “스도이고” 학파 철학자들로 유명하였다. 그러므로 다소에는 “스도아” 철학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컸고, 그들의 사상적 영향은 일반시민에게 까지 미쳤다.


 


감수성이 예민한 바울은 이러한 학문적 풍토 속에서 넓은 시야로 인류의 세계를 보았으며 세계의 끝까지 진출하려는 꿈을 키웠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유대주의나 율법에 국한된 사고를 벗어나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노스틱” 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후에 그가 선교활동을 하기 전 다소에 머물러 있을 때 이러한 사상과 기독교 내지는 유대교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자기 출생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잡혔을 때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행 21:39)고 하였다. 이런 곳에서 자라난 바울의 설교도 매우 도시적이다.( 바울의 설교; ① 도시건축 (고전3:11) ② 군대의 행진 (고후10:3-5, 고전14:8) ③ 노예 시장 광경 (고전6:20, 7:23) ④ 체육장의 형편(고전9:24-25)


 


B. 가   족


 


빌립보서 3장 5절에 바울은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라고 하였다.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출생한 그의 집안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제롬” 이 전해준 전승에 보면 바울의 부모는 본래 갈릴리의 마을인 “기사랄” 에서 로마군이 팔레스타인을 폐허로 만들 때 다소로 피난했다고 한다.


 


그는 로마 시민으로 태어날 수 있을 정도로 부요한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가졌고, 그 이름을 사울이라 함은 베냐민 지파에서 출생한 최초의 왕인 사울을 따라서 명명 한 듯하다.


 


바울은 이와 같이 부요한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는 다 분토와 같이 버리고, 셋집에 유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행 28:30-31) 특히 바울의 생질은 유대인 40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할 때에 그는 바울을 도와 구원하였다.(행 23:16-24)


 


바울이 다소에서 얻은 로마 시민권은 그가 전도 여행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조건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은 자기 영토 내에 거주민을 크게 두 부류로 구별하였다.


 


① 이탈리아의 원주민을 위시하여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로마에 공을 세운 자,


② 금전 또는 정복민과 함께 온 노예들이다.


 


전자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해서 특수한 인권과 권리를 허락하였다. 이것이 어떤 명예나 지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로마법에는 그들에게 체포, 구금, 매질이나, 십자가에 처형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전도여행 중에 반대자들에 의하여 빌립보 옥중에 투옥 되었을 때,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임을 밝히자 즉시 석방되었고(행 22:24-30),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의 난동으로 가이사랴에서 구금 되었을 때, 억울함을 황제에게 호소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기 위해 고소했던 것이다.(행 25:9-12)


 


고대 세계에서는 로마 시민은 영예스러운 칭호였으며 땅 끝까지 통하는 완전 통행증 이었다. 바울은 그러한 시민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또 그것을 자랑하였다. ( William, Barclay, The Mind of St. Paul. 서기간역,


[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울: 기독교문사, p.30.)


 


C. 교    육


 


바울의 가정은 대표적인 바리새인의 가정으로 엄격한 가정교육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유대 법으로는 다섯 살이 되면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율법 전승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바울도 이 규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열 살 때에 유대교의 중요한 문헌들을 암송하였으며 또한 천막 만드는 기술도 함께 익히게 되었다.


 


유대교의 사상은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육 지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유대교육의 목표를 본다할지라도, 이념과 실천 즉 생활 교육의 병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선교사역 과정에서 학창 시절의 직업교육은 그의 선교생활에 크게 기여했던 것을 잘 알 수 있다. (행 18:3, 살후 3:8)


 


바울은 율법을 더 배우기 위해 “가말리엘”에게 보내졌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자기 내력을 이야기한 것을 보면(행 22:3), 예루살렘에 오랫동안 거주한 것으로 말했다.


 


그가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바울의 스승은 아들 “시몬 가말리엘”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인 “가말리엘 1세”였다. 그는 베냐민 출신으로 바리새주의자의 거두였고, 특히 그는 개종자에게 후대함으로 그 이름이 높아졌다.( 전경연외, [신약성서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p.171.)


 


바울은 고향을 떠나 유대 예루살렘에서 율법 교리의 교육을 엄하게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다.(행22:3; 빌3:5-6; 갈1:14.)


 


이것만 보아도 바울은 완전한 교육을 받은 율법자이며 인정받은 법관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항상 자기 자신을 뛰어난 유대인임을 자랑하였다. 바울을 출생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빌 3:5) 즉 그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시로서 선민의 표시를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라는 것과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선택받은 민족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로마서 11장 1절에서도 재삼 강조하였다. 또한 바울은 혈통적으로 볼 때 단순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의 귀족인 바리새인이었다. 즉 그는 충실한 유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별된 사람”중에 한사람었다. (갈 1:15)


 


오직 율법에 따라 살고 사고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었다. 비록 그가 헬라문화권에 살고 있었지만 일반 “디아스포라”처럼 헬라리즘에 동화되지는 않았다.(William Barclay. The Mind of St.Paul 박문재역. [바울신학개론].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pp.14,16.)


 


D. 성   격


 


바울의 성격은 강직하고 열정적이었다. 그가 노한즉 추상같고 평시에는 온화한 봄날 같았다 한다. 이런 성격은 회심 전이나 회심 후에나 변치 않았다. 회심 전에는 이런 성격으로 기독교인을 박해했고, 회심 후에는 또한 이런 성격으로 전도하였다.


 


그는 이런 성격으로 회심 전에는 스데반을 박해하였고, 또한 회심 후에는 베드로를 면책하였다.(행 8:1,갈 2:12) 그리고 교회 안의 교인이라도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거짓 사도요”,”저주를 받은 자들이요”,”개”들이니 삼가 하라고 했다. (고후11:4, 13-15, 갈1:8; 빌3:2)


 


이런 일은 그의 성격이 악해서가 아니라 열정적이고, 강직한 데서 오는 것이다. 이 강직한 성격과 인격은 결국 십자가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바울의 힘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서 유대인의 죄를 회개시키고, 이방인의 마음을 감화시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였다.


 


그이 이 강직한 성격은 전도 여행시에 당한 많은 박해와 환난을 이길 수 있었다. 그가 말한바와 같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니라,”(고후 4:8-10) 바울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의 생명이 그 몸에 있어서 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희랍인 이상으로 조직적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같은 치밀한 조직이나, 로마서와 같은 당당한 논설은 도저히 그 시대 사람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과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다.


 


자신을 가리켜 “죄인의 괴수”,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자라” 또한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였으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다. (딤전1:15; 고전15:9, 13:13; 롬8:39; 고전15:31)


 


결국 그에게는 풍부한 지, 정, 의가 믿음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 훌륭한 사도로서 신학자도 되고, 전도자가 되어, 동서남북으로 쫓아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3. 다메섹도상에서의 바울의 회심


 


A. 바울의 회심 사건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있는 사울은 예수가 바로 다윗이 예언한 구세주이며,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고(행2:25-28, 시16:8-11, 눅24:27)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격분하였으며, 더욱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인 예수 즉 메시야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삼일만에 다시 부활케 하셨다 하며, 유대인들이 이러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는 말에 분노하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스리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한다하고 특히 스데반을 신문할 때 증인으로 섰고, 돌에 맞을 때에는 그가 사형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행 7:55-58, 8:1) 주장하였으며, 또한 다메섹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넣기 위해 산헤드린에서 발급한 정식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강한빛을 보매 그는 땅에 엎드러졌다. 이 때 그는 눈을 뜰 수 없었으며 홀연히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그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나이까” 하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자가 있느니라” 하셨다.


 


동행인들은 그 소리만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고 서 있기만 하였다.(행 9:6-9) 바울과 함께한 사람들에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야를 만나 아나니야의 인도에 따라 시력을 회복하였으며, 그에게 세례 받고 모든 사람 앞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보고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증인이 될 것을 지시받았다고 증언하였다.


 


바울의 다메섹 도사에서 회심의 사건은 사도행전에 삼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회심의 표현이 각각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9장 7절에는 동행인이 소리는 들었으나 보지는 못하고, 사도행전 22장 9절에는 빛은 보았으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사도행전 26장 13절과 14절에는 밝은 빛이 내려와 함께 가던 사람들은 두루 비추었다 하였다.


 


문제는 표현하는 글에 뜻있는 것은 아닌 줄로 안다. 바울은 분명히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나에게도 보이셨느니라” 증거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박해자였던 사울은 그를 복음전하는 사도로 부르시는 소명에 대한 분명한 체험을 나타내고 있다.


 


B. 회심의 신학적 의의


 


바울의 회심에 대한 의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사도행전에 기록과 바울 자신이 쓴 서신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전설적이고 객관적인데 비해, 바울 자신이 쓴 서신( 갈1:15-16; 고전9:1-2; 고후4:5-6.)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바울의 회개의 계기는 바로 바울 자신의 주관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이방에 복음을 전파할 주의 사도로 쓰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역사였다고 하는 편이 올바른 해석이 될 것이다.(행22:21, 고전15:8-10, 엡3:7, 갈1:1, 엡1:1, 딤후1:1)


 


그리고 바울의 신앙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자기의 잘못된 신앙관을 깨닫고 회심한 후 그의 신앙은 180도로 변한 철저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믿었다.(빌 3:7-9)


 


바울은 회심 전에 하나님을 섬기던 율법적인 신앙관을 바꾸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확신을 그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택정하셨다고 하였다.(갈 1:15-16) 하나님은 바울의 전 생애를 영광가운데 인도하셨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오심과 자기의 성별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라 했다.(엡 3:7-9)


 


바울의 이같은 확실한 신앙은 마침내 자신을 이방인들을 구하는 복음의 사도라는 불같은 사명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골 1:25, 딤후 1:9-11)


 


C. 부활에 대한 바울의 확신


 


바울 자신도 회심 이전에는 일반 유대인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유포한 한낱 유언비언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기존 유대 종교를 혼란시키는 이단자로 간주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예수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다는 확증을 얻게 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에 보면 그가 극적인 내적 각성을 설명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가 전환케 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신앙의 핵심이요 또한 바울의 신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경연, [신학성서 신학서설]. 서울: 사상계사. 1955, p.132)


 


바울은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자신이 쓴 서신에서 여러번 언급하고(고전15:1-21; 롬1:4; 고후5:15; 빌3:10-11; 롬6:5-10.) 있으며, 고린도후서 5장1절에서 21절에는 예수의 부활의 역사성을 다루고 있고 기독론의 기초가 되어 있다.


 


예수 부활의 사상이 바울에게 있어서 얼마만큼 ‘핵심적인 것’ 이었는지는 데살로니가 후서와 빌레몬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그의 서신에서 언급하고 있다. (롬6:47:4; 고전6:14; 고후13:4; 갈1:12:20; 고전15:21-22; 엡1:20; 빌3:10-11; 골3:1-3; 살전1:105:10; 딤전2:5-6; 딤후2:8; 딛2:14.)


 


바울은 부활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단호하게 선언한 것은 고린도전서 15장 15절에서 19절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도 신학적인 교리도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직접 체험한 경험에서 얻은 최대의 사건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의 사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으며, 그의 모든 생활의 초점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현존 안에서의 삶에 맞추었다. (갈2:19-20; 고후5:13-15; 빌1:20-21 3:7-9, 10-14)


 


4. 소     명


 


사도행전 1장 8절에 예수의 선교명령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이방 지역으로 점차 확대하여 나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방인에 전도를 위하여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시고 부르셨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소명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단계별로 살펴 보려고 한다.


 


① 하나님께서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모태에 있을 때 이미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정하였다 한다. (갈1:15-16; 롬1:1)


 


② 다메섹 도상에서다. 예수는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자가 있느니라..” 하고 명령하셨다.(행9:4-6 22:10 26:16)


 


③ 아나니아의 예언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강한 빛을 본후 실명하여 있을 때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았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나니아에게 예언하신대로 바울이 “이방인과 임글들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는 것을 알았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주님의 지시대로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하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소명 받음이 기록되어 있다.(행9:15-16 22:14-15)


 


④ 이러한 사명 받은 바울은 3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22:17-21)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사실은 그에게 이방인의 사도로서 확실한 메시지였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이방인의 사도”(갈2:8.)라고 하였다. 다메섹에서 받은 계시로 그의 신앙의 길을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또한 다른 먼저된 사도들과도 의논하지 않고 오직 받은 계시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만 충성하였다. (갈1:16-17)


 


A. 사도로서의 사명 의식


 


초대교회의 사도에 대한 관념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이름이며(녹 6:13) 예수를 배신한 가롯유다 대신 한 사람을 세우고저 두 사람 유스도라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천거하고, 11제자들이 합심기도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사도의 수에 가입케 하였다.(행1:16-26.)


 


바울도 자기를 가르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다.(고전 15:9) 그에게 있어서는 사도는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 충분하였다.( 롬1:1 11:13 15:16, 갈1:1 2:8, 고전9:1-2, 딤후1:1 1:11-12)


 


이러한 바울의 새로운 사도의 개념은 누구나가 가질수 없는 성령의 입증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영에게 귀결시켰다.(고전6:17; 롬8:9; 고후3:17; 행1:8 요6:63)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하였다.(롬8:11 13-14) 영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영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게 소급된다. (고후3:17) 아들의 영을 믿는 자들에게 보여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여 풍성히 주신다고 한다. (갈4:6; 행2:33; 고후1:21-22; 엡2:17-18; 딛3:4-7)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성령을 받아 새로운 생으로 전환하는 생활을 말하고 있다.(고전6:10-11; 고후5:13-15; 갈2:20.)


 


즉 바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이며, 그가 산 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생활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바로 성령 안에 생활이며, 생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또한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한다.(롬6:4-5 8-9; 빌3:10-11) 이러한 성령 안에서의 소망은 그의 사도로서의 사명 의식을 더욱 강하게 하였다.(롬8:23-25 5:1-5, 15:13.)


 


B. 선교에 대한 바울의 자각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으로 예수의 부활과 그가 메시야 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바울의 이방인과 유대인에 대한 선교의 필연성을 로마서 9장과 11장에 잘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회심 후 복음 전도의 사명감을 맡은 사도로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전도해야 할 의무감을 절실하게 느꼈다. 바울은 복음 전도만이 유일한 사명인 줄 알고 복음 전도에 전 생애를 바쳐 충성하였다.


 


C. 선교대상


 


바울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즉 이방지역을 선교 대상으로 삼고 1, 2, 3차에 걸친 대 전도여행을 실시하였다.


 


1차전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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