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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교회사

주후 500년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을 고대라고 부르고. 500-1500년을 중세라고 하며.1500년이후를 근대라고 부른다.

중세의 천주교는 2000년 교회사 가운데 가장 부패한 시기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때 만약 천주교의 부패 상만 비판 하는데 머문다면 그것은 추한 장면만 재현하는 의미 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의 빛비춤을 통해 부패의 원인을 정확하고 분명 하게 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얻어야 할 교훈이다.

로마에는 성 라테란 대 성당이 있다. 이성당은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승인한후 그의 장인 라터라니의 별장을 개축하여 교황에게 기증하였고. 1307년까지 교황청으로 사용하던 성당이다. 십자군 전쟁 후 프랑스 아비뇽 성당에 피신해 가있던 교황이 돌아와서 구 베드로 성당을 재건축하여. 베드로성당은 1600년대부터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성당이 되었다.

계시록에 예언한대로 중세 천주교는 버가모 예표이다. 버가모는 세상과 결혼. 높은탑을 의미한다. 라테란 성당 내부를 보면 많은 성상과 모자이크 많은 조각상을 볼수있다. 천주교는 외적으로 정치와 결혼했고. 내적으로는 세상과 결혼한 상태를 보여준다. 원래 이땅에 있는 교회는 겨자씨처럼 작고 감취어져있고 생명으로 가득해야하지만. 교회의 변질은 높은 탑이되었고. 높은 성당들은 주님의 겨자씨에 나오는 큰나무의 경고가 이루어진 것이다.

서 로마제국은 정치적 혼란과 이 민족의 침입이라는 상황하에서 교황이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된다. 452년에 훈족의 침입과 455년의 게르만의 반달족의 침입으로 점령 당하였을때 교황 레오 1세의 간곡한 부탁으로 군대가 철수 하였다고 한다. 그후 고트족.부르군디족.프랑크족.등의 이 민족 침입과 정치 권력의 무질서로 로마교황이 백성들을 보호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590년 교황이된 그레고리시대에 고대 로마왕국이 중세기의 로마천주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임을 나타낸다. 그레고리는 로마교회의 주교 였을 뿐아니라 중세기의 첫번째 교황이었다. 로마교회는 사도들의 계보를 강조하며 교황권력의 이론을 점진적으로 형성하였다.

레오1세(470) 때에는 교황은 베드로의 직접적인 계승자이고 모든 사도들의 머리라는 주장을 내세웠다.그레고리 시대부터 로마 천주교는 서유럽과 북유럽의 각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각지 주교는 교황의 명령을 들게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교황의 권력을 대대적으로 강화 시켰다.

성 라테란 성당 입구중앙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다. 성라테란교회는 전세계와 모든 도시의 중심이 되는 교회이며 “어미와 머리” 이다.또 성당 안에는 많은 성상과 교황의 좌 가있다.교황의 제단(좌)은 베드로가 사용하던 곳이어서 교황만 앉을 수 있는 곳 이라고 한다.

이것은 계시록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녀가 모든교회의 어미로  많은 물위에 앉아있는 음녀이다.그러므로 여기서 모든교회의 어미와 머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로마 천주교는 정치와 연합 함으로 점차적으로 변질되어 영에속한 유기체로 부터 세상적인 조직으로 변했다. 결국 더 큰성당. 더 복잡한 계급. 더 죽은 의문. 더 죽은 교리가 천주교의 가장 큰 특징이 되어버렸다.

라테란 대성당은 323년에 콘스탄틴이 지어주었다. 침례당건물은 432-440년에 건립한 것이며. 내부를 모자이크로 장식하였다. 1650년 에는 전면적으로 개장하여 내부에는 콘스탄틴황제와 열두사도의 조각상이 외부에는 초기 교부들의 조각상등이 있다.

라테란 성당 옆에는 성 계단성당이 있다. 이곳에는 예수님께서 심판받으실때 올라가신 계단이 있는데 이것을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천주교는 이것에 대해 매우 미신적이다. 믿는이들이 이계단을 오르면서 기도하고 입마추면 그들의 영혼이 연옥으로 부터 나올 수 있다고  말하였다.

마르틴 루터도 16세기 이곳에 와서 무릅으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갈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기억했다. 그때 그는 내가 여기서 하고있는 의식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런방식으로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 때 부터 그는 천주교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갈3장1.3절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잃어버리므로  남은것은 육체의 경건함과 종교의 미신적인 것밖에 없게 되었다.이것는 참으로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가 없다.

로마에는 수천개의 성당이 있다. 그중 마리아를 숭배하는 성당이 가장많다.예수님을 기념하는 성당보다 많다.

로마에는 세계에서 가장큰 네개의 성당이 있는데 성 베드로(바티칸)성당. 성 요한성당(라테란). 성 바울성당. 성 마리아성당인데 성마리아 성당은 마리아을 숭배하기 위한 성당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모 숭배가 없다. 주님은 마리아의 육체를 빌려 이땅에 오셨지만 천주교는 마리아를 하늘의 황후로 숭배한다..

마리아를 숭배 하는것은 381년부터 시작되었고 4세기 부터는 마리아 숭배 사상이 갈수록 심해졌다. 성 마리아 성당이 처음 지어졌을때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파 이단은 대항하기 위해 천주교는 예수님은 과거부터 존재하는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431년 에베소 대공회부터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공식화 했다.

432년부터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개축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때 부터 상황은 더욱 악화 되고 심각해졌다. 먼저는 성모에게는 원죄가 없다 라는 말이 떠돌고. 나중에는 성모가 죽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았다.1950년경에는 성모가 하나님에 의해 직접 하늘오 이끌려졌다는 말도 했다.

이것이 오늘날 천주교의 정통신앙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리아를 하늘로 데려갔기 때문에 성모의 무덤이 없다고 말한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를 가장 숭배했고 마리아를 대대적으로 높였다.

이때 수 많은 이방의 신전들이 대대적으로 복원 되었고 보수 되었다.로마에는 판테온신전이 있는데 천주교는 신전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만들었다.판테온의 뜻은 모든신을 위하여드리는 신전이란 뜻이다.이 신전을 천주교는 성모와 모든 성자를 위하여 라고 바꾸었다.진리에 이단이 추가된것. 생명에 사악함이 섞여진것. 고운가루에 누룩이 더해진것. 이것이 바로 타락한 천주교이다.

천주교는 마태13장의 사악한 여인의 본 모습이며. 계17장은 이 사악한 여인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피에 취한지라” 라고 말한다.

천주교는 성경의 교훈으로 부터 떠났을 뿐아니라 역대로 주님을 믿는이를 핍박하고 살해 했다. 종교 재판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콘스탄티누스 이후 천주교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교황이 된 뒤 종신토록 교황직을 수행하였으며.종신교황제가 시작 되었는데 이것이 중세 교황제도의 시작이었다.

중세의 천주교는 교황이 영원히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고 선포하였다. 즉 교황 무오설을 주장한 것이다.이것은 교황의 말은 성경과 동등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역대 교황의 사적을 종합해 볼때 그들 중 에는 탐욕.살인. 강탈.음행. 하나님을 모독 하는 자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못할일이 거의 없었다.

중세기의 로마 교황청의 허례 허식과 음란함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였으며. 교황청은 거의 매춘부들의 거처와 같았다. 심지어 어떤 교황은 간음현장에서 정부의 남편에게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중세의 천주교는 암흑시대 였다.이러한 흑암시대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빛 줄기의 노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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