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deification)

신화(deification)

 (1) 몇 년 전에 제가 아는 미국형제 하나가 ‘동방 정교회’ 소속 친구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카드 안에는 예상밖에도 ‘God became a man that men might become God’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의 원조 격인 아리우스의 이단교리를 물리치고 정통신앙을 수호한 교부 ‘아타나시우스’가 한 유명한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성도들을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분들은 쉽게 소화하기 힘든 말이지만 2-4세기 즉 교부시대 때만해도 이런 가르침은 성도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말로 받아 들여 졌었습니다.

 

위에서 보듯이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진리는 동 로마교회인 ‘정교회’ 안에서는 현재도 구원론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deification’이 그분들의 신앙생활의 ‘final Hope’ 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교회와 다투고 갈라선 서 로마교회,’로마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던 개신교 성도들은 동방정교회의 ‘신화’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장로교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교계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더구나 ‘신화’됨 사상이 로마제국의 이교도 황제들, 정통교리에서 빗나갔다고 평가되고 있는 몰몬교도들, 심지어 뉴 에이지 신봉자들에 의해 왜곡되게 주장되면서 그나마 이런 가르침을 접했던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에겐 이것이 지극히 ‘위험한 발상’으로 기억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 도처에 계시되었고 정통교부들이 가르친 ‘정통진리’가 ‘위험한 발상’으로 전락(?)되고 성도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게된 데는 사탄의 교묘한 공작이 큰 몫을 했습니다.

 

즉 모조품을 만들어 진품의 가치를 불신케 하는 단골 수법이 먹혀 들어간 것입니다. 가짜 종말론 해프닝을 벌여 사회를 혼란시킴으로 이제는 종말론의 “종” 자만 언급해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요즘의 한국사회 분위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결과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이 세상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현세적인 축복’에 마음이 쏠리게 한 것은 그야말로 빈대 한 마리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운 꼴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더기가 끼어도 장은 담궈야 할 때입니다. 몇 마리의 구더기는 당연히 건져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계 약 200여 국에 4억의 신도 수를 가진 동방정교회에서 ‘신화 ‘에 대한 가르침은 여전히 지금도 핵심교리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http://sailfish.exis.net/~frimmin/Faith/theosis.html 참조). 그분들은 구원의 목적이 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함으로 ‘신화(deification) 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적당히 지내다가(?)’ 언젠가 저 천당 가는 소망으로 사는 개신교도들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그렇다면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나중에” ‘저 천당’인지 아니면 “여기서” 경배대상인 신격엔 참여 못하지만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함으로 ‘신화 되는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동방정교회는 ‘구원(성화)의 목적이 신화’임은 보았지만 그 방법은 ‘침례를 통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롬 6:3-5)이라고만 말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의 회복 안에서 생명의 성숙을 통한 유기적인 구원(롬 5:10)-거듭남, 거룩케 됨, 새롭게됨, 변화됨, 형상을 본받음, 영화롭게 됨-으로 ‘하나님-사람’이 된다는 더 전진된 가르침이 있음으로 인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방법에 있어서도 더 구체적으로 말씀과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증가됨으로 신화되며, 이것을 방해하는 죄, 세상, 자아, 사탄을 끝내는 길인 ‘십자가의 실제’가 ‘그 영’임도 밝혀졌습니다(요 6:57, 고전 12:13, 골 2:19 원문, 롬 8:13). 바울도 ‘그 영을 따라 행하라’는 한 문장의 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갈 5:16).

 

그리고 주의 회복 안에서 말하는 ‘하나님-사람’은 성경의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는 것(벧후 1:3-4) 일뿐, 하나님의 고유영역인 경배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의 요소가 사라지거나, 신성 인성이 혼합되어 제3의 요소가 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은 지극히 균형 잡힌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더기도 걸러내고 장맛도 즐기는 이런 의미의 신화(하나님-사람됨)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체험하도록 겸손히 주님과 순수한 성경말씀 앞에 자신을 열어 놓습니다. 주 예수여! 이 땅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2) 성경이 계시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신화(deification)에 대한 가르침은 초대교부들의 저술 도처에서 발견되는 정통 진리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교부는 아타나시우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다룬 책인 ‘On the Incarnation, 54:3’에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다(He was made man that we might be made God)’ 라고 말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300-373)는 정통교부로서 니케아 신조를 옹호하는 선봉장 역할을 했고, 그의 인격과 진리 전파와 저술은 지금까지 정통교부로서 인정받는데 손색이 없었습니다.

 

신화(deification)에 대해 가르쳤던 그 밖의 교부들 몇 분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클레멘트(150-215) : …신성한 능력과 본질을 붙잡음으로 하나님 된다… We become god by grasping the divine power and substance.

 

2) 성 어거스틴(354-440) : 하나님이 사람까지 낮추셨다면… 사람을 …하나님들 되게 하는… If God humbled Himself to become man, it was in order to exalt men and to make them gods(Serm 13, de temp).

 

3) Justin Martyr(2C) : 시 82:6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들이 될… It(시 82:6) is demonstrated that all men are deemed worthy of becoming “gods” and of having power to become sons of the highest(Dialogue with Trypho 124).

 

4) Irenaeus of Lyon(2c) : 그분은 우리를 심지어 그분 자신의 어떠함까지 되게 하시며 …that He might bring us to be even what he is Himself(Against Heresies, BK. V, preface).

 

5) Hippolytus of Rome(3c) : …하나님으로 만드시는… Thou shalt be a companion of the Diety, and a co-heir with Christ, …For thou hast become God… having made thee even God unto His glory! (Refutation of all Heresies, BK. X, ch. 30).

 

6) Basil(330-379) :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소망 중에 하나님이 되는 것보다 더 숭고한 것은 없다(De Spiritu Santo, chap9 NO 23).

 

이처럼 deification은 정통 교부들이 구원과 관련하여 가르쳤던 보편적인 정통진리입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최종 목표는 성도들이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처럼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도들이 결코 삼위일체의 4격이 되거나 무소 부재, 전지전능하게 되거나 어떤 경우든 경배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엄격한 단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와 몸이 동일한 생명과 본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몸=머리라는 뜻이다 라고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몸은 몸이고, 머리는 머리의 고유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자라서 형상을 이루고 영화롭게 되심으로 그날에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이라는 소망(요일 3:2)은 얼마나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지!

 

저 하늘 어디의 ‘황금성 천당’을 꿈꾸는 이교도적 미신사상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여!! 당신이 속히 “누룩”을 제하사 하늘을 맑게 하소서!

 

 

(3)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은 묵상이나 장기적인 안목을 내다보는 것보다는 뭔가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겐 deification 진리를 알려준다 해도 소화할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깊은 진리는 어차피 추구하는 참된 성도들만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고 “그분의 본성”에 참여케 하신다고 말합니다(벧전 1:3-4). 이러한 일반적인 말씀만으로도 성도들이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은 아니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생명을 가졌다’ ‘하나님 본성에 참여한다’는 말을 조금 더 깊이 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

 

벧후 1:3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hath given unto us…life and godliness)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미 받은 생명’ 또는 ‘거듭남’, ‘하나님의 자녀 됨’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초가 희미하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금 이 순간도 “현재는 없고” 장차 받을 생명을 위해 헛되이 수고하고 있고, 양자됨의 교리와 성령과 예수님 분리 – distinct가 아닌 separate – 교리를 믿는 많은 분들이 저 멀리 “자기밖에 계신”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다.

 

이처럼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받으며 내 안이 아니라 밖에만 계신 생명이라면, “현재 내 안에서 자라시는 생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생명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자신”입니다(요 11:25, 요일 5:12, 골 3:4). 물론 비밀하신 주님에겐 “장차” “보좌로부터” 재림하시는 방면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야 하겠지요(롬 8:10과 34를 비교).

 

2. 하나님의 본성: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성(빛, 의, 거룩, 영광…)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1) : 엡 5:8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now are ye light in the Lord)고 말합니다. ‘너희는… 빛이라’는 말이 보통 말입니까? 하나님만이 빛(요일 1:5-7)이신데… 우린 발광체(빌 2:15)이며 또한 빛입니다. 이 어떤 영광인지요.

 

2) : 고후 5:21은 ‘우리로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we might be mad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문맥상 피로 씻음 받는 객관적인 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고전 1:30)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바울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 안에서 자라 그들 자신이 본성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요일 3:7).

 

3) 거룩: 살전 5:23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도 금이나 예물의 위치를 성전 안으로 옮기는 밖의 거룩이 아니라(마 23:17, 19),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성도들에게 분배하여 그들로 예수님과 형제되게 하는 거룩입니다(히 2:11). 하나님의 본성만이 ‘거룩’이십니다.

 

4) 영광: 히 2:10은 심지어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구주를 고난으로 온전케 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영화롭게 될 때 영광 안에 계신 그분과 같게 될 것을 말합니다(빌 3:21, 요일 3:2, 요 17:22).

 

따라서, 한국교계 안에 ‘deification’ 즉 ‘신화’에 대한 성경진리가 편견없이 받아들여져서 성도들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분배되는 참된 성화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그리스도의 몸이 이 땅에서 건축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마 16:18, 6:10).

 

 

(4) 누가 태평양 바닷물 전체를 작은 양동이 하나에 담는데 성공했다고 외친다면 아마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 어느 날 한 나사렛 사람 속에 들어오신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성육신 사실을 머리로 따져 불신하는 분들은 상당히 sharp하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신화’의 가르침을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deification 진리는 성육신 하신 God-Man을 의심 없이 믿으며, 그분이 인생, 죽음, 부활을 거쳐 생명 주는 영으로 자기 영 안에 들어온 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요 1:14, 고전 15:45, 요 3:6하).

 

이제 거듭난 분들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신성화시키며 또 방해요소들은 무엇인지 보기 원합니다.

 

신화는 한마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고전 15:45)을 “먹고 마심으로” 믿는 이들 안에서의 하나님 자신의 증가(increase)로 이뤄집니다. 또한 타락 시 사람의 마음에 있게 된 이물질들이 방해요소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목표인 신화됨의 진리를 받지 못하게 하는 실질적인 대적은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만 알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치우친 성도들의 종교성과 타락한 자아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으로 이런 장애물들이 제거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1. “하나님 자신”을 먹고 마심

 

요 5:57은 예수님이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시면서 ‘나를 먹는 그 사람은 나로 인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먹으라’는 이 구절이 단순히 성경 공부하라는 말 그 이상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요 5:40). 또한 고전 12:13은 ‘우리가…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마신다’는 이 말씀도 전체 문맥상 방언하고 병 고치도록 ‘뜨거운 성령세례 받으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 생수 또는 성령을 마시라는 말은 성령이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들어오는 것을 가리킵니다(요 7:38-39, 요 4:10, 14, 고전 10:4, 계 21:6, 22:17, 사 12:3-4). 시 36:8에서 다윗이 말한 ‘주의 집의 살찐 것’ ‘주의 복락의 강수’ 사 12:3-4에서 말한 ‘구원의 우물물’의 실제는 다 사람들이 먹고 마심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하나님 자신을 먹고 마신 결과는 골 2:19 본문 말씀처럼 성도들 안에 ‘하나님 자신이 증가되는 것(increaseth with the increase of God) 즉 생명의 성장입니다. 하나님 자신으로 심고 물을 주었더니 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증가한다는 성경 말씀은 고정관념만 없으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요일 3:9, 고전 3:6-7, 9, 갈 4:19).

 

바울은 이런 비젼 아래서 결국엔 썩어질 모든 것들은 다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 자신’만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빌 3:8).

 

2. 밭인 마음을 가꿔야 함

 

마 13:18-23의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주님의 해석을 보면, 뿌려진 씨는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상태가 길가인지, 돌밭인지, 가시밭인지, 좋은 땅인지에 따라 성장정도가 각기 다릅니다.

 

즉 이 세상 것들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어 말씀을 들어도 귀에 안 들어오거나, 양심 안에서 어떤 진리가 옳은 것은 알지만 불이익 받기 싫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분은 영적 생명이 자라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고린도 교인들처럼 지식과 은사는 많아도 생명에서는 영적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떤 특정 교파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분열이 아닌 하나을 추구하기 위해 기득권을 다 버리고 참된 진리를 따르게 된 몇 형제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제 안에는 늘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사람 많이 모인 곳이 다 옳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생명 길은 좁으며 자신을 부인해야 갈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마 7:14, 16:24). 이 시대에 생명이신 주님 자신과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증가를 관심하고 추구하는 분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저는 한 때 국에다 미원을 넣지 않으면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화학조미료가 몸에 해로운 것을 알고도 이러한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가장 좋은 건강음식은 ‘주님 자신’뿐입니다. 여기다 “부추 마늘” 그리고 “누룩”을 넣으면 당장은 맛이 있겠지만 결국엔 몸을 망치고 병들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매일 순수한 주님 자신을 먹고 마심으로 신화(deification)됩니다. 아이가 젖먹고 밥먹어 성인으로 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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