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의 적용(9)-핍박 받을 준비를 하라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못된 일을 하면 벌 받고 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칭찬과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이와는 정 반대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위했던 모든 사람들>-이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철저한 반대와 거절과 핍박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주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주님이 누구십니까? 가장 좋은 것(눅11:13)을 인류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못된 강도와 유사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를 더 혼란케 하는 것은 이러한 핍박이 외견상 사탄 마귀 
모습을 한 무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경우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뜻을 위해 사도된 바울을 가장 괴롭히고 
힘들게 한 것은 무지한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고 성경을 제법 안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에는 이런 일이 그쳤을까요?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절대적으로” 분투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분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있나요? 우리의 과거 체험을 돌아볼 때 적당히 예수를 
빋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절대적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더 깊게 헌신한 이후로 끊임없는 고난과 핍박이 있는 것을 
양심가운데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며, 성경에는 어떤 사례가 있으며, 
주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배도의 물결이 도처에서 출렁이는 이 마지막 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좁은 생명길을 가려면 핍박과 고난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슬퍼하지 말고…. 

1.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치료한 경우 

어제와 오늘 아침에 마가복음 3장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안식일 문제로 대립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 갔을 때 거기 ‘한 손 마른 남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그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있던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를 분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송사할 거리를 찾으려고 지켜보고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이 딱딱한 것(the hardness of their hearts)에 대해서 
주님은 근심하시고 분노하셨습니다(막3:5). 

그리고 그런 일이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자신을 핍박할 원인을 제공할 것을 아셨음에도 주님은 그 사람을 
치료하셨습니다.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바로 나가서 헤롯당원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것인지를 의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6절). 

이런 기록과 우리의 체험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는 자들은 
“사람 자체”를 관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참된 필요를 채워 주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칭 유대인들'(성경은 이들을 
심지어 사탄의 회당이라고 지칭함, 계2:9, 3:9)은 성경의 표면적인 기록을 
근거로 이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심지어 죽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자칭 유대인들’은 누구입니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생명공급을 통해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지 못한 사람들, 성경의 문자적 기록만을 의지하여 사람들을 판단하고 
괴롭히는 모든 사람들, 자신이 정통 교회에 속해 있다고 자부하나 그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실제(갈5:16)는 없는 사람들, 회심 전의 사울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자칭 유대인들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살면서 주 안의 
형제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요일2:11)이 사실은 하나님의 경륜을 가장 
방해하는 대적입니다. 

저는 교회 생활 어느 시점 쯤 그럴 권한이 있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가 있었 
을 때 한 부끄러운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즉 주일 집회에 늘 5분 10분 늦는 
지체들을 몇 번 권면하다가 어느 날은 정시가 되어 집회소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의 선봉에 섰던 것입니다. 

주일 집회에 매번 지각하는 “기본이 안 된” 지체들을 향하여 저의 의로운 
요구가 집행될 때 저는 그런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게으르고 부주의하게 교회생활하는’ 그 지체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런 일로 인해 그 지체들이 집회에 일찍오는 사람들로 
온전케 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깊이 상했고 심지어 실족했 
습니다. 몇 번 경고(광고를 통해)를 해도 무시하는 그분들의 태도로 인해 그 때 
제 마음은 굳어 있었습니다. 늦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서 알려고 
도 하지 않았고 참되게 주 안에서 세우려는 사랑의 마음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왔다가 몇 년 후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저는 그 당시의 일을 그 
당사자들에게 회개했습니다. 

사람들을 참되게 주 안에 세우려는 사랑의 마음이 없이 성경 말씀이나 
‘자기가 만든 율법’을 들이대는 것만큼 하나님의 경륜을 대적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날 행해지는 소위 이단 삼단 정죄의 상당 부분은 이런 관점에서 
반드시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 서기관들(scribes)의 판단 

마가복음 3:22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이 예수님을 향하여 
‘저가 바알세불이 지폈고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 낸다’고 
정죄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죄는 예수님이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의 친척 중 하나가 예수님이 미쳤다고 말한 것에 
어느 정도 근거합니다. 

이 앞부분 2장에서 또 다른 서기관은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말하자 예수님을 속으로 참람하다고 생각했습니다(6절). 
즉 그의 성경 지식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능히 죄사함을 
줄 권세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7절). 

그의 이런 성경지식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인자로 오신 그분이 또한 하나님이심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진리의 양면 중 어느 한 쪽을 보지 못하고 다른 한쪽만으로 
주님과 그분의 지체들을 ‘참람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큰 장애물입니다. 

또는 성경진리의 깊이에 있어서 피상적인 진리만을 붙들고 더 깊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도 고난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성도들의 거룩’에는 위치적인 면과 성분적인 면이 있으나 
위치적인 거룩은 이해하되(고전1:2) 흠이 없는 거룩인 성분상의 거룩(엡1:4, 
히2:11)을 보지 못한 채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이단 삼단 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본 서기관의 판단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것을 볼수 있는 눈이 
없는 한 그는 자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경륜을 대적 
하다가 그냥 그렇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정리되었습니다. 

1. 예수님은 사람의 참된 필요를 관심하고 채워주는 사람을 사셨습니다. 

2. 그러한 삶에 대해 반대와 핍박이 있을 것을 아셨지만 피하지 않았습니다. 

3. 반대자들의 참소에 침묵하지 않고 알아듣도록 자신을 변호하셨습니다 
(막2:9-10, 3:23-29). 

4. 성경의 어느 한 면만을 붙잡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을 본 사람 
들에게 가하는 핍박은 계속 될 것입니다. 

5. 그러한 핍박은 주로 ‘자칭 유대인들’이나 ‘서기관들’로부터 올 것입니다. 

6. 이것은 사실은 어둠의 왕국과 빛의 왕국(골1:13, 마12:26,요일1:7) 
간의 대립입니다. 

7.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조만간 핍박과 반대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고자 하시는 분은 그러한 경우을 당할 때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고 미리 미리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고후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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